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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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서 ‘찬양대’와 ‘성가대’라는 명칭이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 두 이름 모두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예배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고, 이를 통해 섬기는 이들에게 명확한 방향과 힘을 주기 위해 ‘찬양대’로 통일하고자 합니다.
성가(聖歌)는 ‘거룩한 노래’라는 뜻으로, 노래의 성격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반면 찬양(讚揚)은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기리고 드러내는 것으로, 노래의 형식보다 예배 행위와 그 대상(하나님)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즉, ‘무엇을’ 부르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향해’ 드리는가가 이름 안에 분명하게 담겨 있습니다.
성경(개역개정)에는 ‘성가대’라는 표현이 직접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역대상 25장을 비롯한 여러 본문에서 성전에서 노래로 섬기는 이들을 ‘찬양하는 자’, ‘찬송하는 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표현을 따른다면, ‘찬양대’가 우리의 정체성을 훨씬 더 잘 드러냅니다.
역사적으로도 한국 초창기 교회는 ‘찬양대’ 혹은 ‘찬미대’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새문안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에서 1910~20년대부터 이미 이 이름을 사용한 기록이 있습니다. ‘성가대’라는 표현은 일본어 聖歌隊(せいかたい)의 영향으로 이후에 혼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찬양대’로의 통일은 성경적 표현을 회복하는 동시에, 우리 고유의 신앙 전통을 되찾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성가대’는 거룩한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반면 ‘찬양대’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구별된 대오(隊), 즉 예배의 군사들이라는 능동적이고 헌신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찬양대는 순전히 헌신으로 섬기는 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단순히 음악을 연주하는 단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세워진 예배자들입니다. ‘찬양대’라는 이름은 이러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부르심 받은 찬양의 군사들입니다”라고 격려할 수 있는 힘을 담고 있습니다.
이름이 방향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드리는 것은 노래가 아니라 예배이며, 그 예배는 하나님을 향합니다. ‘찬양대’와 ‘성가대’ 모두 귀한 명칭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방향성을 더욱 분명히 하고, 섬기는 모든 분들이 명확한 정체성을 갖도록 돕기 위해 ‘찬양대’라는 이름으로 하나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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